1961년에 개봉한 영화 ‘킹 오브 킹스(King of Kings)’는 니콜라스 레이 감독이 연출하고 미크로스 로자가 음악을 맡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가장 서사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성서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종교 영화의 틀을 넘어, 인간의 내면과 시대적 갈등, 그리고 구원의 의미를 예술적으로 그려냈습니다. 특히 당시의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 속에서도 레이 감독은 철저히 작가주의적인 시선으로 예수의 인간적인 고뇌를 묘사했고, 로자의 음악은 그 감정선을 섬세하게 이끌며 영화를 완성시켰습니다. 본 글에서는 이 작품을 연출, 음악, 메시지 세 가지 측면에서 깊이 있게 분석해 보겠습니다.

'킹 오브 킹스' 연출의 미학과 상징성
‘킹 오브 킹스’는 거대한 스케일과 회화적인 연출로 1960년대 초 할리우드 영화 미학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감독 니콜라스 레이는 성서 속 이야기를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존재와 신성의 경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먼저 눈에 띄는 점은 색채의 사용입니다. 레이는 색의 대비를 통해 인간과 신의 세계를 구분 짓습니다. 예수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부드럽고 따뜻한 색조가 주를 이루며, 이는 ‘사랑’과 ‘용서’의 상징으로 작용합니다. 반면, 로마 제국의 장면에서는 붉은색과 검은색이 강조되어 폭력과 권력을 상징하죠. 이러한 색의 대조는 단순한 미장센을 넘어 영화의 철학적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장치가 됩니다.
카메라 워크 또한 예사롭지 않습니다. 광활한 사막에서 인물을 극단적으로 작게 배치하는 구도는 인간의 나약함과 신의 위대함을 표현하며, 이는 예수의 겸손한 인간성을 더욱 부각합니다. 특히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천천히 후퇴하며, 인간의 고통을 초월하는 초연한 시선을 제공합니다. 그 순간 관객은 단순한 종교적 감정이 아닌,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또한 레이는 당시 할리우드 대작 영화들이 주로 사용하던 ‘대규모 세트’와 ‘장엄한 연기’를 절제하며, 대신 인물의 감정선과 표정을 세밀히 포착했습니다. 예수의 침묵, 눈빛, 손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상징적 의미를 지니며, 관객에게 내면의 울림을 전달합니다. 이런 점에서 ‘킹 오브 킹스’는 단순한 스펙터클 영화가 아니라, 철학적 깊이를 지닌 영상 예술이라 평가받습니다.
음악의 감정선과 서사 구조
음악은 이 영화의 영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곡가 미크로스 로자(Miklós Rózsa)는 이미 ‘벤허’와 ‘쿼바디스’ 등에서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을 선보였지만, ‘킹 오브 킹스’에서는 한층 더 내면적인 감정 묘사에 집중했습니다.
오프닝 테마는 영화의 전체적 정조를 제시합니다. 브라스와 현악기의 조화로 시작되는 장엄한 서곡은 신성함과 비극이 공존하는 영화의 톤을 미리 예고하죠. 흥미로운 점은, 로자가 예수의 테마를 전통적인 종교 음악처럼 단조롭지 않게 구성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예수를 ‘초월적 존재’이자 동시에 ‘인간’으로 표현하기 위해, 신성한 선율 속에 인간적인 불안과 희망을 함께 녹여냈습니다.
중반부의 ‘산상수훈’ 장면에서 음악은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로자는 침묵을 음악의 일부로 사용하여, 예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더 큰 울림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직접 남긴 말 중 “음악이 멈출 때 진짜 감정이 들린다”는 철학은, 바로 이 장면에서 구현됩니다.
반면, 예수가 십자가를 지는 장면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전면적으로 등장하며, 낮은 현악기의 음색이 인간의 고통을 대변합니다. 이 장면의 음악은 종교적 경건함보다 인간적 연민을 중심에 두고 있어, 신앙의 대상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이해하게 만듭니다. 마지막 부활 장면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장엄한 합창이 등장하며, 이는 절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의 상징으로 작용합니다.
로자의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영화의 감정과 구조를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서사이자 언어입니다. 그는 관객이 장면을 ‘보는 것’을 넘어 ‘느끼게’ 만들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영화 음악의 교과서로 평가받는 이유입니다.
메시지와 시대적 의미
‘킹 오브 킹스’는 냉전 시대의 불안과 이념 갈등 속에서 제작되었습니다. 그 시대의 정치적 긴장은 인간이 신념을 잃어가는 시대적 공허함을 상징했고, 감독 니콜라스 레이는 그 틈에서 예수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성의 회복을 이야기했습니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종교적 신앙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류애, 용서, 평화, 그리고 인간의 선택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가 폭력과 증오의 시대 속에서 ‘사랑’을 선택하는 모습은, 현대 사회의 갈등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독교적 서사가 아닌, 인간 본성의 깊은 통찰이기도 합니다.
또한, 영화는 “권력과 믿음의 대립”이라는 시대적 문제를 은유적으로 담아냅니다. 로마 제국의 권력은 물리적 힘을 상징하고, 예수의 존재는 도덕적 양심과 영적 자유를 상징합니다. 레이 감독은 이 대립을 통해 “참된 왕국은 마음속에 있다”는 주제를 설파합니다.
예수의 마지막 시선은 하늘을 향하지만, 카메라는 천천히 지상을 비추며 끝납니다. 이는 인간이 여전히 이 땅에서 사랑과 용서를 실천해야 함을 암시하죠. 즉, ‘킹 오브 킹스’는 단순한 예수의 전기 영화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던지는 도덕적 질문의 영화입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전쟁, 혐오, 차별이 만연한 오늘날, 이 영화가 전하는 “사랑과 희생의 윤리”는 시대를 초월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킹 오브 킹스’는 연출, 음악, 메시지라는 세 축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고전 예술의 정수입니다. 레이의 철학적 연출은 예수를 인간으로, 로자의 음악은 신으로 그려냅니다. 두 요소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관객은 신앙을 넘어선 깊은 감동을 경험합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과거의 명작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영원한 예술 작품입니다. 지금 다시 이 영화를 감상한다면, 당신은 아마도 “신을 보는 눈”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킹 오브 킹스’는 오늘도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떤 세상을 사랑하고, 어떤 진실을 믿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