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17’은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SF 철학 영화로, 인간의 정체성과 복제 윤리를 중심에 둔 독창적 세계관을 제시한다. 영화는 단순한 미래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 서사다. 철학전공자나 인문학적 사유에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이 작품이 제시하는 존재론적 질문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본 리뷰에서는 ‘미키 17’이 어떻게 인간복제라는 소재를 통해 자아의 의미, 윤리적 선택, 그리고 존재의 유한성을 성찰하는지를 분석한다.

미키 17 속 존재론적 질문, “나는 누구인가”
‘미키17’의 핵심은 철저히 존재론적이다. 주인공 미키는 복제 기술로 인해 수십 번이나 재생된다. 그의 육체는 새로워지지만, 기억과 정체성은 단속적으로 이어진다. 영화는 이 지점을 통해 철학의 근본 질문, “나는 누구인가?”를 던진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가 미키의 세계에서는 흔들린다. 복제된 존재가 ‘생각’을 이어간다면, 그 존재는 여전히 같은 자아일까? 봉준호 감독은 이 질문을 통해 인간이 단일한 정체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기억의 연속성’ 속에서 스스로를 정의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특히 미키가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는 장면은 철학적 긴장을 극대화한다. 두 개의 미키가 서로를 ‘진짜’라 주장하며 대립하는 순간, 영화는 ‘존재의 동일성’에 대한 깊은 사유를 유도한다. 철학적으로 이는 존 록의 기억이론과 맞닿아 있다. 즉, 자아란 기억의 연속성이 보장될 때만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봉준호는 여기에 반문한다. 기억이 복제된다 해도, 감정과 고통의 주체는 동일한가? 미키의 각 복제체는 같은 기억을 가지지만, 각기 다른 죽음의 경험을 겪는다. 결국 영화는 ‘기억이 곧 존재인가’라는 존재론적 역설을 제시한다.
인간복제와 윤리적 딜레마
‘미키 17’이 가장 빛나는 지점은 인간복제라는 설정을 단순한 SF 장치가 아니라 윤리적 고민의 장으로 확장했다는 점이다. 복제는 생존을 위한 기술이지만, 동시에 인간 존엄성을 시험하는 철학적 실험이다. 미키의 세계에서 복제는 자본에 의해 통제된다. 죽은 노동자를 복제해 다시 투입하는 시스템은 인간의 생명을 단순한 ‘자원’으로 전락시킨다. 이는 마르크스의 소외 이론과도 연결된다. 인간이 자신의 노동과 생명을 도구로만 소비하는 사회, 그것이 바로 미키 17의 세계다. 영화 속 복제윤리는 “살아 있음”의 정의를 다시 묻는다. 생물학적으로 복제된 존재에게도 권리와 존엄이 존재하는가? 감독은 이를 도덕철학적 관점에서 해부한다. 칸트의 정언명령처럼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여야 한다. 그러나 미키의 세계에서는 복제가 곧 ‘효율성’이 되어버린다. 인간이 인간을 도구화할 때, 윤리는 붕괴한다. 또한 미키의 반란은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윤리적 각성이다. 그는 자신이 ‘교체 가능한 존재’ 임을 인식하면서도, 스스로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이 선택은 실존주의의 핵심, 즉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를 체현한다. 비록 복제된 존재일지라도, 선택과 행동이 그 존재의 본질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이 윤리적 딜레마를 통해 인간복제가 단순히 생명공학적 논쟁이 아닌, 인간의 자유의지와 도덕성의 시험대임을 드러낸다.
복제의 시대에 던지는 철학적 은유
영화 ‘미키17’은‘미키 17’은 단지 미래의 이야기로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현대 사회를 향한 은유다. 우리는 이미 디지털 복제 시대에 살고 있다. SNS, 아바타, 인공지능—우리의 자아는 수많은 형태로 복제되어 존재한다. 봉준호는 이 현실을 SF적 상상력으로 확장하여, 복제가 가져오는 ‘정체성의 분열’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철학적으로 이는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연상시킨다. 복제된 미키들은 모두 동일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미묘한 차이와 새로운 의미가 발생한다. 즉, 복제란 단순한 복사가 아니라 새로운 존재의 생성이다. 봉준호는 이 철학적 개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며, ‘복제된 자아의 다양성’을 예술적으로 탐구한다. 또한 영화는 인간의 유한성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병행한다. 미키의 반복된 죽음은 불멸의 욕망이 아니라, 죽음의 필연성을 강조하는 장치다.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인간이다. 무한한 복제가 가능해질수록, 오히려 ‘삶의 의미’는 퇴색한다. 이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통찰과 닿아 있다. 즉, 죽음을 인식할 때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존재로서의 삶을 경험한다. ‘미키 17’은 인간복제라는 극단적 설정을 통해 “죽음을 제거한 사회에서 인간은 여전히 인간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대답은 아이러니하게도 복제된 미키의 눈물 속에서 제시된다. 인간의 본질은 기술이 아닌 감정, 고통, 그리고 유한성 속에서 완성된다는 메시지다.
‘미키 17’은 단순한 SF 스릴러가 아니라, 철학적 사유의 영화다. 봉준호 감독은 기술 문명 시대의 인간이 잃어버린 ‘존재의 의미’를 복제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여준다. 영화 속 미키들은 인간의 복제품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실험하는 철학적 알레고리다. 이 작품은 존재론, 윤리학, 실존철학을 아우르는 복합적 텍스트로, 철학전공자들에게 풍부한 사유의 거리를 제공한다. ‘복제된 인간’이라는 주제는 곧 ‘존재의 복제’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미키 17’은 인간의 존재가 기술로 대체되지 않는다는 선언이자, 윤리가 여전히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마지막 장벽임을 일깨운다. 결국 이 영화는 철학적 언어로 표현된 인간 찬가다.